역대 세계 최고 부자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세계최고부자..... 누구??  역대 세계최고부자들 알아보았습니다.
참고로 현재 세계최고 부자는 멕시코의 카를로스 슬림 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 그의 재산 규모는 약 680억 달러 수준이라고 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부인데 ... 사실, 지금은 슬림에게 밀려 있지만, 한때 IT정보 혁명을 이끌었던 빌게이츠는 1360억달러 규모로 세계 1위부자자리를 차지 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현존하는 세계 최고부자 보다 더 극강한 부를 자랑했던 역대 세계부자들이 있었으니 .... 1위는 ... 거의 뭐 4000 억 달러라고 하니 ..... 정말 ㅎ ㄷㄷ 한 부를 소유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역대 세계 최고 부자 ... 시대를 무시하고 가장 많은 부를 소유했던 것을 기준으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당근 현재의 화폐가치로 환산이 된 금액이라 할 수 있겠죠? 



1. 만사 무사 1세 (1280년 출생) - 4000억 달러 역대 세계 최고 부자 1위


만사 무사는 칸쿠 무사로도 불리는 14세기 말리 왕국의 왕입니다. 말리 왕국을 1312년부터 1332년까지 통치하며, 말리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는데, "당대 가장 부유한 남자" 라고 불렸으며, 한 일화로 메카에 순례할 때 노예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다음에는 자유를 얻었음) 1만 2000명, 아내 800명, 황금 11톤을 싣고 가 도중에 모인 가난한 사람들에게 황금을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만사 무사가 그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부의 상징은 소금과 황금이었는데, 말리 제국은 전 세계에 있는 소금과 황금의 반이 나오는 최대 산지였습니다. 덕분에 만사 무사는 어마어마한 양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만사무사는 자신의 부를 이용해, 당대 최고의 건축가 학자들을 귀국시켜 자신의 제국을 문화적으로 부흥시킨 성군으로도 알려졌는데 안타깝게도 그렇게 많던 재산 또한 상속자간의 분란과 정복에 의해 2대만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2. 로트실트(로스차일드)가문 - 3500억달러 역대 세계 부자 2위


로트실트 가문은 18세기 후반 유럽 황금시기에 은행 및 금융업무를 장악해서 떼돈을 벌었습니다. 로스차일드 은행을 차린 메이어 암셀 로트실트를 시작으로 그의 가문은 3500억 달러라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이러한 부를 쌓은 이유로 전해지는 일화는 워털루 전투입니다. 당시에 영국하고 프랑스(나폴레옹)하고 워털루에서 한판 붙었는데, 전쟁의 승리 소식을 하루 일찍 알게 된 로트실트는, 이것을 정보전으로 이용하게 됩니다. 즉, 나폴레옹 프랑스군이 영국군을 이겼다는 거짓 정보를 퍼트리게 되고, 이를 알게 된 일반인들이 앞다퉈 영국국채를 처분하려고 할때 로트실트는 이를 헐값에 사들이게 되었고, 이틑날 영국이 이겼다는 영국정부의 공식적인 발표 후에 영국국책가격은 다시 오르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중에 무려 20배에 달하는 이익을 챙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도 중첩된 혼인관계로 로트실트 가문은 월스트리트를 비롯해 세계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3. 존 록펠러 (1839년 출생) - 3400 억 달러 역대 세계 최고 부자 3위

어린 시절 간혹 떼돈도 벌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란 록펠러는 돈에 대해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지금까지도 자기 개발서의 원조가 되기도 하는 근검절약, 시간절약, 성공의 지름길과 같은 이야기와 잠언들은 모조리 돈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그럼 어떻게 록펠러가 거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을까? 정답은 석유입니다. 이미 현대인들의 산소나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이 연료가 산업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록펠러를 공룡 기업인으로 만들어 주었던 겁니다.  1878년 4월, 미국 전체 정유 능력에 해당되는 360만 배럴을 차지하고 있었고 1881년에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95%를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독점이라고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록펠러는 사업가로서는 냉혈한 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눈물도 없이 타 기업을 흡수 통합하고 돈되는 일이면 무슨 일이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집무실에 앉아 여자, 음악, 미술 감상도 하지 않은채 오로지 들어오는 돈과 나가는 돈을 살피면서, 이토록 부유한 재산을 내려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해 하였다고 합니다.

록펠러는 평생동안 많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습니다. 석유로 세상을 움직이는 왕이었으며 이 말을 자본의 왕이라는 말과도 상했습니다. 엄청난 재산을 기부와 사회사업에 쏟아 부었습니다. 비판자들이 비아냥거려도 독실한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그의 방식대로 성경을 읽고 사랑을 실천한 신자였습니다.





4. 앤드류 카네기 (1835년 출생) - 3100억달러 ... 역대 세계 최고 부자 4위 ..... 예전에 위인전에서 읽은듯 ㅋㅋ

1835년 11월 25일 스코틀랜드의 던펌린에서 태어 났다. 직조공이었던 부친은 수동식 직조기를 이용해 작은 가내 공장을 운영했었는데, 증기식 직조기가 도입 되면서 생계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1848년에 카네기 일가는 고향을 떠나 이민선에 몸을 실었고, 미국에 도착해서 친척이 사는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인근에 정착했다.
학력이라곤 덤펌린 초등학교를 다닌 것이 전부였지만 사회생활 초기에 카네기는 남다른 근면성실을 발휘항여 상사들의 호감을 사게 되었다.

1856년에 우연한 기회에 철도 침대차 사업에 투자해 처음으로 거금을 쥐었다. 217달러 50센트를 대출받아 투자한 결과 2년만에 매년 5천달러의 배당금이 나올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남북 전쟁이 발발하자 카네기는 전쟁부에서 일하던 스콧을 따라 워싱턴으로 가게 되었고 자기 분야에서의 경험을 살려 철도와 전신 복구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 즈음 미국 석유산업 초기의 산유지로 유명한 타이터스빌의 석유회사에 거금을 투자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고, 훗날 본격적인 사업의 밑거름이 되었다. 1863년 카네기를 키스톤 교량 회사를 공동 설립하여 철강분야에 뛰어들게 되었고 "강철왕"이라고 별명을 얻게 된 까닭은 미국에서 강철의 대량 제조 및 유통을 실현시켰기 때문이다.

카네기는 한창 사업 확장에 분주했던 1868년, 33세에 이미 은퇴 계획을 세운바 있었고 35세에 은퇴하고 생활비 연 5만 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수입은 모두 자선 사업에 쓰겠다는 계획을 세운바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은퇴는 30년이 지난 1901년에야 실현 되었다. 물론 지연된 년수에 걸맞게 자선사업에 쓸 돈을 크게 늘어났따.

역설적이게도 카네기는 인류애는 넘쳤지만 인간미는 떨어지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다. 수 많은 기부 행위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적잖이 빛이 바랜다. 카네기의 가장 돋보이는 자선사업은 도서관 건립사업이었다. 동기가 어찌되었던 카네기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자선사업가 가운데 하나였음을 분명하다. 당대 최고 부자였던 록펠러 또한 이 분야에서만큼은 카네기를 능가하진 못했다.



5. 러시아 차르 니콜라스 2세(1868년) - 3000억 달러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왕이었다. 유럽에서 아시아 땅끝까지 뻗어있던 그의 제국은 198년 볼셰비키 혁명에 신기루가 되어 날아갔다. 그를 비롯해 일족이 몰살당하고 3000억 달러에 달하던 어마한 재산 또한 공산 혁명세력에 몰수당했다. 그의 이름은 현재 익숙한 크리스탈 샴페인을 통해 전해진다. 그가 즐겨 마신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 루이 로드레사의 "크리스탈" 샴페인 가격은 한 병당 약 80만원이다.  




6. 미어 오스만 알리 칸 (1886년 출생) - 2360억 달러

인도 서부 하이데라반드의 통치자였따. 이곳은 후에 인도의 침략을 받았다. 알리 칸은 1억 달러 어치의 금과 4억 달러 이상의 보석을 개인적으로 모았다.



7. 정복자 윌리엄 (1028년 출생) - 2295달러

정복자 윌리엄은 1066년 영국을 침략한 뒤 장악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가 1087년 세상을 떠날 때 아들들에게 남긴 유산은 2295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1066년 도버해협을 건너 잉글랜드 침략을 개시하여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잉글랜드 왕 해럴드 2세에게 크게 승리하였따. 윌리엄 1세가 잉글랜드를 점령함에 따라 잉글랜드의 왕조는 노르만 왕조가 되었다.


8. 무아마르 카다피 (1942년 출생) - 2000억달러

1969년 당시 27세였던 카다피는 사관학교 동료 및 후배들과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은 후 혁명평의회 의장, 국가원수, 군 사령관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반 서구주의를 강조한 카다피는 미국과 영국의 군사기지를 철수하고 외국계 석유회사를 내 쫓았으며 석유회사를 국유화 하였다. 카다피는 군주를 제외한 세계 최장 집권자로 무러 42년간 리비아를 철권 통치했으며,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자신의 아들들에게 정재계의 주요 요직을 주었다. 장남은 리비아 올림픽위원장, 차남은 아버지의 대변인, 3남은 리비아축구협회장, 4남은 국가안보보좌관, 5남은 리비아 석유 수출 등을 책임. 2011년 10 월 20일 고향 시르테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9. 헨리 포드 (1863년 출생) - 1990억 달러

헨리 포드는 1863년 7월 30일 미시건 주 디트로이트 근처에 있는 디어번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 지역은 개발이 전혀 안되었던 지역이었는데 대부분의 주민들은 농업에 종사했었다. 농업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버지와는 반대로 헨리 포드는 농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인간보다 기계가 친근했고, 그가 존중하는 사람은 토머스 에드신 같은 발명가나 과학자들 이었다.

20세기초 소수에게만 허락ㄷ되던 개인용 탈것을 만인의 것으로 대중화 시킨데 결정적 기여를 한 이가 바로 헨리 포드이다.
포드는 입버릇처럼 5퍼센트가 아니라 95퍼센트를 위한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으며 자동차라면 복잡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일반인들도 조작하기 쉬워야 하고 비포장 도로든 어디든 달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싼 값으로 차를 내놓기란 어려운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산 공정 단순화와 합리화로 해결했다. 컨베이어 벨트를 동입 반복 라인 생산 시스템 창출 등을 통ㅇ해 작업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져서 1908년 노동자 한 사람이 연간 자동차 3대를 만들어 냈다면 1914년에는 19대를 생산해 낼 수 있게 하였다. 1908년에는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자동차가 만들어졌는데, 1914년에는 24초당 1대가 되었다. 포드의 노동자는 일당 5달러를 받았는데 동종업계에 비해 두배에 이르는 고임금이었다. 이는 헨리 포드 자신 또한 주체할 수 없는 돈을 벌 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10.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 (1794년 출생) - 1850억 달러

1800년대 초반 미국에서는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가 부자로 급 부상했다. 행운 과 항만사업으로 거부가 되고 남북 전쟁 후에 철도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어마어마한 부를 일궈내었다. 밴더빌트 또한 부자가 아니었다. 12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연락선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했따. 16세 부터 연락선을 사서 사업을 시작했으며 골드러시 때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가는 증기선을 운영하며 거부가 되었다. 골드러시라는 역사적인 시기가 부의 축적에 행운을 가져다 준 셈이다.



12. 빌 게이츠 (1955년 출생) - 1360억 달러

빌 게이츠의 현 자산 규모는 625 달러로 슬림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1999년 MS 주가가 상종가를 치던 때 그의 재산은 현 시세로 1360억 달러에 달했다. 현역에서 물러나 그의 재산은 이전에 비해 반토막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빌게이츠는 여전히 세계 2위 부자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세계 제 1의 부자의 무조건 빌게이츠였다.


22. 카를로스 슬림 (1940년 출생) - 680억 달러

멕시코 이동 통신 업계의 대물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부자이다. 전기통신 회사인 텔멕스와 아메리카 모빌의 회장이자 CEO이다. 아메리카 모빌은 현재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휴대전화 회사이다.


25. 워런 버핏 (1930년 출생) - 640억 달러

20세기 가장 성공적인 투자자로 여겨지는 워런 버핏 소유의 최대 재산은 640억 달러이다.


이상으로 세계 역대 최고 부자 25위 알아봤습니당 ....~~!! 좋은 하루 되세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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