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친 대표팀 선수들이 아시안컵에 출전해 우승을 노리고 있는 가운데....오늘은 우리나라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 하는 마음으로 축구 포스팅 하나 작성해 봅니다.
어렸을 적에 축구를 참 좋아했었습니다. 이렇다 하게 축구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 때는 90 월드컵때부터 인듯 한데요, 특히나 94년 월드컵때는 우리나라 선수들의 후반 뒷심에 열광했고, 치토스 "따조"에 나왔던 "베베토", " 클린스만"에 열광했었고, 98 월드컵때는 어떻게 보면 다소 졸전을 펼쳐 보였던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을 보면서 열광은 커녕 한숨을 쉬었지만, 막판에 보여준 투지에 무한 박수를 보냈던 기억이 나네요.
시간이 지나 2002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축구는 체질개선을 한듯 보였 는데요, 이러한 배경에는 아래 소개하는 선수들의 등장과 사람짐 속에서, 현재 우리나라 축구를 빛내고 있는 선수들이 탄생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또한 앞으로는 박지성과 같은 한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 전 선수의 기량 상향 평준화를 기대해 보면서, 오늘은 과거 축구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선수들과 앞으로를 빛낼 수 있는 선수들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합니다.
어렸을 적에 축구를 참 좋아했었습니다. 이렇다 하게 축구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 때는 90 월드컵때부터 인듯 한데요, 특히나 94년 월드컵때는 우리나라 선수들의 후반 뒷심에 열광했고, 치토스 "따조"에 나왔던 "베베토", " 클린스만"에 열광했었고, 98 월드컵때는 어떻게 보면 다소 졸전을 펼쳐 보였던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을 보면서 열광은 커녕 한숨을 쉬었지만, 막판에 보여준 투지에 무한 박수를 보냈던 기억이 나네요.
시간이 지나 2002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축구는 체질개선을 한듯 보였 는데요, 이러한 배경에는 아래 소개하는 선수들의 등장과 사람짐 속에서, 현재 우리나라 축구를 빛내고 있는 선수들이 탄생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또한 앞으로는 박지성과 같은 한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 전 선수의 기량 상향 평준화를 기대해 보면서, 오늘은 과거 축구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선수들과 앞으로를 빛낼 수 있는 선수들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합니다.
아쉬움이 많이 드는 고종수 선수
▶ 전남 여수 출생 (1978년) ▶ 대한민국 최고의 왼발 스페셜리스트 (왼발 진짜 잘 쓴다) ▶ 기술축구 전무하던 시절 기술축구의 가능성을 보여준 선수 ▶ 대한민국 최고의 프리키커 (2001년 1월 3일 한일올스타 VS 세계올스타전에서 나온 프리킥골등, 수많은 프리킥 골 성공) ▶ 너무나 아까운 미드필더 ▶ 두뇌형 플레이와 게임 센스 ▶ 캡틴박을 능가할 수 있었던 재능 |
아쉽다 아쉬워 " What a pity "
그 중심에는 안정환, 이동국, 고종수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고종수 선수에 대한 미련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네요. 정말 재능으로만 따지면 당시에 이 선수를 따라올 선수가 없었는데.....말이죠... 아래에 소개하는 이천수도 타고난 재능을 가진 선수임은 분명하지만, 타고난 재능면에 있어서는 고종수를 능가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네요 ....
고종수의 축구 인생
1997년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약 6만여 관중석을 꽉매운 한일전을 하고 있었는데, 전반 초반부터 질질 끌려 다니고 있었다. 그 중심에 일본 축구의 영웅 나카타 히데테시가 있었으며, 그때 당시 나카타 역시 데뷔전을 치르고 있었다.
이때 차범근 감독이 22번 고종수 선수를 내 보냈는데 그제서야 비로서 일본의 공세를 압도하며 게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감독은 " 한국 22번 선수가 누구냐 면서 " 놀라움을 나타냈었다. 또한 1998년 출전한 프랑스 월드컵에서 고종수는 137분간 출장하면서 한국선수로는 유일하게 기술축구를 선보였었다. 비록 골은 되지 않았지만, 골문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던 중거리 드롭슛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2001년 1월 한일 월드컵을 위해 구성한 히딩크호에도 이름을 올리며 자신의 진가를 나타냈었다.
하지만 그 해 8월 고종수는 십자인대 파열을 당하고 그의 축구 인생은 그 일을 계기로 급격하게 하향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후 부상은 번번히 그를 괴롭혔다. 2003년 일본 교토상가에 진출했으나 적응에 실패했고, 한 시즌 만에 돌아온 수원에서도 부상때문에 별다른 활약없이 5경기 출전에 그쳤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부활을 꿈꾸며 2005년 전남 유니폼으로 갈아입었지만 역시 발목 부상으로 재기하지 못했다.
2007년에는 수원에서 스승으로 인연을 맺었던 김호 감독을 따라 대전에 둥지를 틀었다. 전성기 기량을 회복하지 못한 고종수는 결국 '비운의 스타'로 이듬해 은퇴를 선언, 영원히 그라운드를 떠났다.
하지만 현장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 때문에, 지난해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며 찬찬히 그라운드 복귀를 준비해왔다. 지난해 말 광주 FC 코치직을 제안 받았지만 선뜻 프로팀 코치가 되는게 두려워 고심 끝에 고사했다. 그러다 윤성효 수원 감독고 정성훈 감독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매탄고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하게 됐다.
아쉬운건 나도 마찬가지다. " 이천수 선수 "
입천수라 불리우는 것에 대한 나의 견해
우승권의 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구요 .. 일단은 ..그런말은 축구선수가 듣기에는 듣기 나쁜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구요 ...잘난 척하다가는 큰코 다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천수, 인터뷰 중에서- |
이천수 선수에 대한 축구 시청자들의 평가는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리는 것 같습니다..
"그를 욕하면서 축구 선수 이전에 사람이 되어야 한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말썽은 일으키지만 재능만은 아까운 선수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은 것 같아요. 이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두번째 쪽에 더욱더 가깝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인터뷰 중 이천수가 햇던 말이 생각이 나네요.... 참으로 거침이 없죠 ?? (박스안)
"그렇습니다... 이천수는 어떻게 보면 자신감에 가득찬 선수이자, 에너지가 넘치는 선수였습니다" 천편 일률적으로 듣기 좋은말만 해가며 인터뷰를 하는 다른 선수 들과는 달리 이천수는 자유분방함이 가득한 선수였습니다. 재능 또한 그때 당시 이천수 만한 선수도 없었습니다.
박지성이 과거 고교 시절에 1년 후배 이천수와의 경기 직후 " 저렇게 축구를 잘하는 선수를 본적이 없다" 고 말했을 정도니깐요....
그렇기 때문에 사고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감을 단지 국내 k-리그에서만 보여주었다면 그는 분명 우물 안 개구리, 그야 말로 소인배 였을 것이지만, 제가 생각하는 이천수는 국가 대표 유니폼을 입고, 외국의 강팀과 경기를 치뤘을 때도 변함 없었습니다.
물론 해외에 진출해서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고요. 단지 개인적으로 적응에 실패 했고, 운이 조금 받쳐주지 않아 해외 진출은 실패로 끝났지만 말입니다.
이러한 장점에 비교되는 이천수가 가진 고질적인 약점은 축구 선수로서의 인내심 부족, 축구 선수로서의 집중력 문제, 자기 관리 부족, 다혈질 등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종수와 마찬가지로....다만 아쉬울 뿐입니다. 충분히 박지성을 능가하는 선수로 성잘할 수 있는 선수였는데.....말이죠.
대성의 기운이 보이는 " 이청용 "
호리호리한 체격이지만 그는 축구로 대성할만한 요소를 두루두루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문전 앞에서의 침착한 위치선정에 이은 골 결정력이라고 생각 하는데요....
얼마전에 끝난 남아공 월드컵 우루과이전에서도 보여준, 침착한 위치선정에 따른 헤딩골은 그의 침착함을 잘 보여준 예라고 생각 합니다. 또한 그의 경기를 유심히 살펴보면 강슛을 때리기 보다는 타이밍에 의한 슈팅, 소프트한 터치에 의한 정확도 높은 슈팅등이 많이 있습니다.
그 동안 2000년대 이전의 우리나라 축구를 지켜봤던 축구팬들은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 골 결정력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많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이청용 선수의 포지션이 완벽한 포워드는 아니지만, 공격수로서 공격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반가운 소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만 아쉬운 점은 골에 대해 더욱더 욕심을 부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현재 이청용은 EPL 볼튼에서 뛰고 잇는데, 리버풀이 한국을 방문 했을 때 제 2의 이청용을 찾기 위해 왔을 정도로 이청용은 실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청용은 이제는 완벽하게 주전을 꿰찮을 뿐만 아니라 감독님의 신임도 두텁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그의 축구 숙성은 시간 문제일뿐, 앞으로 더욱 활약한다면 박지성을 뛰어 넘는 것도 꼭 불가능 한 일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되네요... 생긴것도 좀 잘 생겼네요 ^^ 인기 많겄어 ㅎㅎㅎ
손흥민이 누구여 ?
손흥민은 현재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에서 오른쪽 미드필더로 뛰고 있습니다. 나이는 적어도 당당한 주전입니다.
2010 ~ 2011 시즌 분데스리가 전반기에 7경기 3골을 넣었고, 시즌을 앞서 열린 9 차례 프리시즌 평가전에서 무려 9골을 터뜨렸습니다. 같은 팀 소속 세계 최고의 공격수 였던 판 니스텔로이가 기록한 골은 8골이었는데 말이죠.
단순 비교는 힘들지만, 세계 4대 빅 리그 중 하나인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이정도의 성과를 보여준 것만 해도 그의 능력은 이미 입증 된 셈이 되겠네요.
더군다나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나이인데, 현재 18세인 그는 서울 동북고 1년 때 대한축구협회가 보내는 해외연수 프로그램 수혜자로서 독일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지만 꼭 성공 하리라는 믿음 하나로 버티면서 기량을 닦은 결과가 이번 시즌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 것 같네요.
손흥민은 박지성, 이청용 등 유럽파들의 뒤를 이을 만한 재목이라고 높게 평가 되고 있습니다.
과거 어린 나이에 샛별처럼 등장해 한국 축구의 희망이 되었던 선수들은 이동국, 박주영, 이천수 등 여럿이 있었습니다. 과거와 현재 그들 모두는 당당 하게 성장해 한국축구의 기둥이 되었고 많은 성과를 거두었더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그들보다 손흥민에게 더 관심이 가는 이유는 손흥민이 그들 나이에 보여주고 있는 경기 완성도 측면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고 한국축구를 이끌어 갈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습니다.
축구 재목들 ..... 가능성에서 끝나지 않았으면 .....
축구에 박지성이 빠지면 안되지 ..... 축구 선수로서는 어울리지 않았던 체격, 평발, 어린 시절 소외되었던 시간들, 네덜란드 리그에서의 초반 부적응, 이 모든 것을 박지성 선수는 오직 "노력" 하나만으로 극복했습니다. 앞에서 언급된 비운의 스타들 처럼 타고난 축구 재능도 그에겐 부족했습니다. 다만 창조해 냈을뿐. 앞으로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박지성처럼 불굴의 의지로 대한 민국 축구를 세계 정상급 팀으로 만들어 주길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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